소설가 김인배의 ‘삼천포 바다’

김인배의 소설에는 삼천포 바다가 여러 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보낼 때까지 감수성이 풍부한 영혼에 영향을 주었고, 꿈과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의 단편소설 <환상의 배> 서두이다.

“언젠가 가 본 적이 있는 장소, 혹은 어느 모퉁이 인적 드문 한적한 곳, 또는 어떤 기회에 찾아간 고향, 더욱이 그 고향이 바닷가일 경우,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해 버리고 풍문도 낯선 타향에 온 듯한 고적감과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을 때, 그래도 아직 단 하나 변하지 않은 바다의 물결 소리만이 옛날의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단서가 될 때, 그리하여 쓸쓸한 해변을 거닐면서 스스로 무심한 물결소리를 듣는 동안 새로이 만나는 사물에도 과거에 본 사물의 영상이 비쳐오는 것을 본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객지에 떠나 살 때도 추억은 항시 잿더미 속에 남겨진 깜부기 모양 꺼지지 않고 고향의 형상과 색채와 냄새와 온갖 소리를 되살려 준다. 바람 잦은 그 해안 길 갖가지 표정을 만들어내던 햇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던 그 푸른 빛깔의 뉘앙스, 그 오묘한 바다와 항시 대면하며 지냈던 고향 삼천포는 내 인생의 행방을 결정해 준 그 체험적 깊이에 있어서 결코 작은 항구도시일 수만은 없다. 추억하면 할수록 그곳은 언제나 내 일생을 통해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나의 존재 형성을 지배해 온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가장 광대한 우주로 변모하여 내면 깊숙이 늘 자리 잡고 있다.” – 작가가 부르는 思鄕의 노래 (경남신문 2007년 8월 27일자) 중에서

작가는 지금은 사천시로 바뀐 지명 속에서도 고향 바다를 떠올리면, 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삼천포’를 떠올린 듯하다. 이처럼 삼천포항 작은 포구는 고향이 이곳인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러할 듯하다.

동 트지 않은 어둑한 새벽, 선창가에서는 물 좋은 생선들이 살아서 펄떡거리고, 부지런한 상인들의 손놀림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여기저기 생선 냄새를 맡은 갈매기들은 낮게 선창가를 맴돌며 끼룩끼룩 소리 지르며 날아오르기를 반복한다. 회색빛 안개가 멀리 섬과 등대 위를 감싸며 내려 앉아 있는 바다를 본다. 태풍 예보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어선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먼 대양 위에서 강렬한 원색의 광선과 비바람과 파도에 씻기고 시달린 흔적들이 항해를 마치고 나란히 정박해 있는 선체의 곳곳에 상흔처럼 박혀 있다.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선측의 철재는 녹슬고 빛이 바랬고, 세월의 무게를 끌어 올리느라 칡덩굴처럼 단단히 감겨 있는 굵은 밧줄은 어부들의 팔뚝과 손등에 드러난 투박한 힘줄과 닮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포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고향의 포구는 오랜 항해에 지친 그들을 품어준다. 객지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지칠 때마다 나를 품어 준 삼천포 앞바다가 그리워지곤 했다. 그럴 때면 불쑥 찾던 작은 이 포구에서 나는 다시 힘을 얻곤 했다.

장편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에는, 해질 무렵 실안 바다가 생생히 묘사되어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그대의 영혼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적이 있는가? (중략) 남해 연안의 소도시 삼천포로 가라. (중략)

하늘과 바다가 경계를 허문 해질녘의 실안 앞바다에 서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냥 이유도 없이 울고 싶어 못 견디는 것이다. 그 희한하고 묘한 감정의 마술적 조화는, 거제도의 도장포 마끝(남단)에 있는 ‘바람의 언덕’에 섰을 때와는 진정 판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남아있는 것들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가슴 아프게 저릴 때라면,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보러 간다지만, 그런 때엔 더더욱 실안 앞바다의 그 황홀한 석양은 보려들지 말 것이다.

매일 다른 모습과 색채를 띠는 그 바다의 표정………. 하기야, 잘 보면 세상엔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실안 낙조’가 또한 잘 증명해 준다.

거기선 시각적인 것이 정신을 압도한다. 물 빠진 포구의 고요한 개펄이 낙조 속에 아스라이 실제보다 더욱 멀어 보인다, 역광 속에 검은 섬들은 점점이 실루엣으로 떠 있다. 밀물이 다 차기 전에 진펄 위에서 조개를 파던 사람들이 서둘러야 하는 시각이다.

물살이 빠른 조류의 길목을 막고 대나무로 울타리를 엮어 발처럼 드리웠다하여 속칭 죽방렴으로 통하는 정치망에 가득 갇힌 물고기 떼를 부지런히 쪽대로 건져내던 어부들의 전마선도, 이윽고 해안선까지 가득 차오른 밀물과 함께 돌아온다. 깃들이기 직전의 수많은 새떼가 하늘에서 풍문(風紋)을 그리듯이 한참을 활공하다가 저녁먹이를 찾아 일제히 내려앉는다.

그 시간대의 바다는 마지막 석양의 마술적 색채의 조화로 인해, 가히 현란함과 황홀의 극치를 연출한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대의 가슴은 소름이 끼치도록 움츠려 들 것이다.

두렵건대, 땅거미 질 때는 실안에 가지 마라. 저녁 바다를 보다가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대의 심란한 마음은 바야흐로 거미줄에 얽혀 바동거리는 나비나 잠자리 꼴이 되기 십상이니까. 삼천포 8경의 하나인 ‘실안낙조(實安落照)’는 ‘살인낙조(殺人落照)’로 돌변하기 여반장(如反掌)인 것이다. (중략)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최후의 일탈 행위일지도 몰라, 만일 그렇다면, 그 일탈을 참으로 행복하고 평화스런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빈 마음이 되거들랑 그제야 비로소 그대는 실안의 낙조를 보러 가도 좋으리.

그때 와서 보면, 끊임없이 들고나기를 반복하는 바닷물에 고요히 조응하는 갯벌의 긴 둑에서, 내 어릴 적 보았던 것처럼 해안선의 모래톱이 아직 남아있는 한, 그대는 사구식물인 갯메꽃, 해당화, 갯방풍, 갈퀴나무, 갯완두 외에도 모래톱에 납작 엎드린 순비기나무 등속을 간혹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안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등대와 죽방렴을 만난다. 평화로운 바다 풍경이다. 그러나 가까운 섬 위로 숨 가쁘게 달려 온 하루해가 연분홍에서 진분홍, 주홍, 빨강으로 시시각각 수채화 물감을 혼신의 힘으로 하늘에 뿜어내면 실안 바다는 그 모든 빛을 가만히 받아 품어주며 자신도 붉게 물들어 간다.

그 노을빛 바다를 보노라면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슬픔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무릇 아름다운 것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슬픔이다.

김인배의 장편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는 인간의 ‘기억’에 대한 탐색을 줄기차게 펼쳐나간 소설이다.

“기억은 마구 흩어놓은 그림판의 퍼즐조각 같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이 이를 함축한다. 기억은 개인들의 존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주고 유지해 주는 중대한 정신 활동이다. 기억은 손쉽게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준다. 그런 때는 시간이 정지되고, 사라진 존재들이 기억 속에서 부활한다. 언제 어디서든 기억을 통한 시간 여행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고통을 동반한 어두운 빛깔로 채색되어 있다면?……. 기억은 고통스런 굴레가 될 것이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까닭은, 만약 그러한 기억을 상실하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첫 출발지가 이 소설에서는 ‘바다’와 ‘섬’이다. 바다와 섬이라는 공간은 이 소설에서 원형적 상징을 말한다. 여기서 바다는 모태(母胎)의 양수(羊水)와도 같은 질료로 그려진다. 그리고 육지와 단절되고 세상과 격리된 채 낙후된 형태로 고립된 섬, 그곳에 갇힌 존재는 자궁 속에 든 인간의 원초적 모습이다. 그 속에서 차츰 인간의 참모습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화자는 “나를 품고 길렀던 섬을 떠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비로소 세상 밖을 나오는 아이처럼 배 밑바닥으로부터 천천히 빠져나” 오는 화자의 행동은 비로소 삶의 이치를 이해하고 허무를 극복하는 재생(再生) 혹은 부활의 이미지다. 허무의 극복, 모든 예술 작품의 궁극적 결말은 인간 구원에 있다.

“세상의 중심은 오직 자기의 의식 안에 있을 뿐”이라든가, “기억은 오성(悟性)의 범주에 속한 것이며, 망각되지 않는 한 누구의 죽음도 진정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기억’이야말로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죽은 자도 현실세계에 다시 부활시키는 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2600여 년 전 붓다가 깨달은 진리는 바로 삼라만상 모두가 내 의식 안에서 투영된 세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의식 속에 공존하며, 삶과 죽음 또한 이와 같다.

따라서 김인배 작가 역시 누군가가 의식 안에서 기억한다면, 같은 시공간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 부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설가 김인배> (1948~ 2019)

사천(삼천포항)출신, 1975년 문학과 지성에 소설 ‘방울뱀’으로 등단. 1980년대 ‘작가’ 동인으로 활동함. 1982년 현대문학에 중편 ‘물목’이 그 해의 소설로 선정되고, 조명화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됨.

⁍ 소설집 : ‘하늘궁전’, ‘문신’, ‘후박나무 밑의 사랑’, ‘비형랑의 낮과 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 ‘오동나무 꽃 진 자리’, ‘열린 문 닫힌 문’ 등

⁍ 우리말 연구서 및 한일 고대사 연구서 :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가’,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 ‘고대로 흐르는 물길’, 역설의 한일 고대사 任那新論’, ‘일본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 神들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