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⑩

동네 산책 4

글・사진 조영아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전력 질주를 하다 갑자기 멈추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잔뜩 긴장한 몸과 마음이 채 풀리지 않은, 여유로운 일상이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이 어색한 주말 아침이다.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침 7시, 운동화 끈 불끈 매고 동네 산책에 나선다. 소소한 일탈이라면, 아침 세수를 건너뛰는 정도.

 

2. 수북이 내려앉은 은행나무 잎

1_코가 즐겁다.

아파트 후문을 통과하여 뒷산 산책로를 향한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뺨을 스친다. 덕분에 정신이 개운해진다. 산 입구에 접어드니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뿜어나오는 냄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냄새가 고약하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난 오히려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더 맡으려고 애쓴다. 왜냐고? 좋으니까. 인위적인 어떤 조향調香보다 백배 천배 더 좋은, 자연 그 자체 아닌가! 자연이 주는 순수한 선물을 인간이 감히 싫다 할 자격이,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그냥 감사할 따름이지.

 

3. 외부인의 출현에 놀란 청솔모

2_귀가 즐겁다

사그락 사그락, 휘~익 휘~익, 숲속에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다! 청솔모 두 마리가 외부인의 출현에 놀라 잽싸게 나무에 올랐다 숨었다 한다. 나와 청솔모들의 느닷없는 숨박꼭질 놀이가 한판 벌어졌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어 보았으나 낙엽 밟는 바스락대는 소리를 피할 방도는 없었으니, 그저 선주민의 넓은 아량을 바랄 뿐. 녀석들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듯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4. 곱게 물든 단풍나무 잎

3_눈이 즐겁다.

정자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이름 그대로 곱게 물든 ‘단풍’이 인사를 한다. 반갑다. 올해 들어 제대로 물든 단풍 구경이 처음인 것 같다. 며칠 전 지역신문에서 이상고온 현상과 병충해로 가로수 벚나무 잎이 일찌감치 다 떨어지고 겨울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을 단풍은커녕 봄에 벚꽃도 보기 힘들 수도 있다고 하니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를 따라 가만히 찾아오는 대자연의 조화造化를 깨뜨리지 않고 우리가 살아갈 방도는 없을까? 깊이깊이 고민하고 나부터 작은 실천을 하리라.

 

5.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 두 켤레

4_마음이 즐겁다.

맨발로 걷는 중년의 부부를 만났다. 평상 아래 분홍색 검은색 등산화를 가지런히 벗어놓고 공원을 맨발로 산책한다. 자식 이야기, 이웃 이야기, 직장 이야기, 저녁 찬거리까지… 나누는 얘기의 소재도 다양하다. 부부의 목소리에 따뜻함과 평안함이 묻어난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이 배여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던가! 자연이 주는 위로도 크지만 아름다운 부부의 뒷모습에서 더 큰 위로를 얻는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평범하게 사는 거라지.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기며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후엔 남편하고 바닷고둥 잡으러 삼천포에나 갈까?

 

 

6. 정상 쉼터
7. 즐비한 운동기구들
8. 수양정(궁도장)
9. 사천향교
Previous article
Next article

다른 글 읽기

최근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