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⑦

반야사 수국 산책

글・사진 조영아

 

 

달라서 더 풍성하고 달라서 더 아름다운

수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솔직히 내 취향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작고 여린 풀꽃이나 야생화 쪽이다. 그런 내가 요즈음 백천골 반야사(사천시 백천길 30-46)에 매일 수국을 보러 간다. 6~7월에 개화하는 수국이 한창 꽃을 피워내는 중이기 때문에 하루 동안의 변화가 궁금하고 기대되어서다. 절 경내 여기저기에 심겨 있는 잎사귀 큰 식물이 자신의 내밀한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보통의 식물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고 나를 유혹하고 있다.

처음엔 수국의 화려한 자태에 눈길이 갔다가 이내 색도 모양도 제각각인 수국의 다채로움에 매료되었다. 종류가 얼마다 되나 세어보다가 그만두었다. 색이 분홍, 보라, 파랑, 노랑, 하양…, 그리고 단색인 것과 섞인 거, 덩이가 별 모양, 둥근 모양, 세모난 모양…, 그리고 큰 것과 작은 거, 꽃잎이 널따란 것과 좁다란 거, 토종인 것과 외래종인 거까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달라서 더 풍성하고 달라서 더 아름다운,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우리네 사람 세상도 그러했으면…….

 

 

반야사를 산책하다

점심시간 산책 장소로 반야사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올봄부터다. 사무실과 가깝고 속세를 떠난 듯한 작은 고즈넉함이 마음에 들었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산이나 숲을 걸으면 바닷가를 산책할 때와는 사뭇 다른 평온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갑갑하면 바다로, 마음이 허전하면 산이나 숲으로 간다. 요즘 분위기는 후자 쪽이다.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12시 30분, 반야사 초입에 작은 주차장이 있어 차를 대고 걸어서 오른다. 적당히 경사진 길을 오를 때 느껴지는 허벅지 근육의 긴장감이 좋다. 길옆에 흐드러지게 핀, 이제는 지고 있는 풀꽃도 이쁘다. 중간쯤 오르면, 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설법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린다. 설법을 읽는 저 우아한 여자 목소리의 주인은 누굴까? 불자는 아니나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번뇌가 사라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위에 풍경 소리 살포시 울려 퍼지니, 이보다 더 평화스러울 수 있을까.

법당 올라가는 돌계단 아래에 석류꽃이 떨어져 여기저기 널려 있다. 색이 참 곱다. 다음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면 석류나무 한그루 꼭 심어야지. 늙은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설익은 살구도 덩달아 나뒹굴고 있다. 그 옆에 씨알이 작은 보리수도 한창 익어가고 있다.

법당 앞에서 반야사 개냥이와 맞닥뜨렸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와 배를 발라당 뒤집기도 하고, 내 신발에 몸을 비비고 제 털을 묻히는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매번 난감하다.

반야사 앞뜰에서 내려다보는 사천대교와 사천만, 그리고 용현 볏논 풍경이 가관이다. 모심기가 한창인 듯 논에 물이 그득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차오른다. 석양이 질 때 보면 더 멋지다는데, 지금도 넉넉히 좋다!

반야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대략 20분이면 족하다. 점심시간에 짧은 산책을 즐기는 거라 늘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오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오게 되면 절 뜰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앉아 한껏 쉬어가리라.

 

36년생 우리 엄마는,

절을 내려오는데, 6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못지않은 더위가 느껴졌다. 족히 30도는 넘을 것 같다. 이 더위에 36년생 우리 엄마는 남의 집 양파 수확하러 가셨단다. 얼른 양파를 걷어 들여야 모를 심을 수 있다 하니, 남의 집 농사일에 엄마 마음이 더 급하다. 2년 전 엄마의 자랑이자 기둥이었던 장남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슬픔에 빠져 계신 엄마에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주는 농사일! 그 일을 못 하시게 막을 재간은 없고, 여름에 땀띠가 잘 나는 엄마의 여린 피부를 지켜줄 최신상 땀띠분을 말없이 검색한다. 자식들에게 1도 의존하지 않고 슬픔도 일상생활도 오롯이 홀로 감당해 나가시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 나도 그리 살 수 있으면, 살아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풀냄새 흙냄새 맡으며 걷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 틈이 날 때마다, 아니 없는 시간을 내어서라도 내가 걷고 또 걷는 이유다. 쉼표 하나 찍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2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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