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길&숲] 용궁 가는 이순신 바닷길 – 삼천포대교와 초양, 늑도까지

걷길, 보길, 쉬길
[사천의 길&숲] 용궁 가는 이순신 바닷길 – 삼천포대교와 초양, 늑도까지
글⦁사진 이용호

 

용궁 열차타고 떠나는 아름다운 바닷길

바다는 윤슬*이고 햇살은 봄이다. 은빛 멸치들의 군무 뒤로 출정을 앞둔 거북선 손질이 한창이다. 천 년 전 왜적은 수장되었지만 바다를 삶터로 간직해 온 민초들의 거북선은 아직도 치열하다. 오밀조밀 모여 앉은 굴항은 유년의 초등학교 교정 같다. 아름드리 교장나무가 물길의 섭생을 타이른다. 물때를 잘 살펴야 하고 등대를 좌표삼아 암초를 피해야 하며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용궁의 음덕을 입어야만 만선의 숲을 누린다고 일러준다. 한줄기 바람이 출정을 알리자 충무공의 장검이 일성을 고한다. 용궁 열차 타고 실안 물길과 바다 숲을 건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용궁출장소로 출근한다.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이르는 순우리말

 

녹음이 짙게 서린 대방진 굴항

거북선이 엮어낸 역사 출판사, 대방진굴항

대방진 굴항은 왜구의 노략질에 맞서기 위해 구축한 인공 군항으로 조선 수군의 요새였다. 활처럼 옴팍하게 은폐된 포구엔 국태민안을 위해 치열하게 들끓었던 피의 혈투가 박재되어 있다. 200년을 넘긴 팽나무와 느티나무 고목들이 고단한 세월을 검버섯처럼 안은 채 비렸던 피바람을 봄꽃으로 피워 내고 있다. 대하소설은 능히 될 법한 곤한 세월들이 통통거리는 뱃소리에 엮여 훈훈한 역사로 발간되고 있는 곳. 충무공의 얼이 유유히 흐르는 굴항 숲은 그래서 사천의 역사와 민초의 숨결이 쉼을 이루는 고고한 삶터다. 윤슬을 누비는 저 고깃배의 평화로움이 굴항의 긴장된 역사요 혁혁한 은공임을 고마워하며 명작 앞에 한동안 넋을 맡긴다.

 

군영숲 바람터미널에서 본 용궁 가는길

바람도 숭고한 군영숲 터미널

굴항이 엮어 준 소설 한권 받아 들고 군영 숲으로 올라선다. 아담한 찻집 사이로 녹슨 조선소가 빨간 열정을 덧입은 채 물길을 모으고 있다. 천 년 전 그 바람처럼 이 바다와 이 숲과 길과 배조차 거북선을 닮았다. 대물림의 덧옷을 입고 있는 듯 살가운 온기를 마시며 바람이 정박하는 터미널 군영숲에 들어선다. 옛적 이 숲에선 군영의 훈련이 이어졌고 지친 병졸들이 휴식을 취하며 하늘과 바다로 가족의 안위를 물었을 것이다. 길과 숲이 하나 되어 자연과 사람의 생을 이어 주고 그 끝에서 우리는 지금 숨 쉬고 삶을 다독이며 다시 그 길과 숲의 노고를 지켜주고 있다. 군영 숲 바람이 숭고하다.

일전에 맡겨둔 남일대 코끼리가 궁금해진다. 숲 대합실에 물어보니 코끼리가 가져온 은모래 떡과 옥빛 바다커피가 대박을 쳤다고 한다. 바람이 제일 많이 사갔다며 오늘 저 다리를 건너면 바람 맛이 사탕이라고 귀띔해 준다. 코끼리는 늑도에서 디저트 카페를 차린 건지 궁금하다. 대교위로 케빈에 몸을 실은 우주인들이 손을 흔든다. 저들은 아마 수족관 문을 통해 용궁으로 들어갈 모양이다. 나는 초양과 늑도의 용궁출장소를 한 바퀴 돌아보고 쫀득한 물살 가에 앉아 족욕이나 실컷 해야겠다.

 

금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실안 노을 정원

물살이 빚어 낸 향긋한 노을 정원길, 삼천포대교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을 거머쥔 창선-삼천포대교에 올라서니 알싸한 사천 맛이 짭조름하게 밀려온다, 천길 아래 분홍 상괭이가 얼굴을 내밀까 고대했지만 아마 남일대 코끼리한테 특채되어 카페 알바로 일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강물인 듯 여울목을 휘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꿈틀거린다. 익룡들이 우르르 날아오를 것 만 같다. 이 물살을 먹은 멸치는 은빛 옥체를 자랑하며 사천의 명물이자 용궁마케팅의 주역으로 활동 중이라 하니 예사롭지 않다. 듬직한 물살이 자라고 있는 사천에는 만선의 물꼬를 트고 마을마다 붉은 노을을 정원으로 들여 사천 사람들의 삶을 도톰하게 살찌우는 향긋한 바다숲이 있다.

 

바다속 용궁놀이터 아라마루 아쿠아리움

용궁수족관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이다. 그네 타듯 절해고도에 매달린 모습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용궁 놀이터다. 바다와 하늘을 아우르는 사천의 희망이 녹아있는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은 바다 케이블카와 함께 사천의 랜드마크다. 희귀 생물과 자연 친화적 전시구조는 물론 케이블카와의 환상적 연계를 통해 사천의 비경을 패키지로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요새로 부활하고 있다. 쫀득한 실안 바다 숲 안에 또 하나의 용궁 유토피아가 살고 있다. 사천의 모든 길이 용궁과 우주로 탯줄을 이어놓고 있다.

 

주홍빛 지붕이 예쁜 이국의 섬 초양도

유럽을 옮겨놓은 듯 상괭이의 고향, 초양도

초양도로 내려선다. 주홍빛 집들이 아드리아해변의 어촌처럼 이색적이다. 물고기들이 마실 나가듯 골목도 고소하다. 담장도 겸손해서 바다가 마당처럼 들어앉았다. 강물인 듯 근육질 물살에 폭우가 내리는 날엔 호박이나 돼지라도 둥둥 떠내려 올 것만 같아 정겹다. 바다와 강을 정원으로 품은 초양도엔 상괭이가 박제된 예쁜 쉼터가 있다. 햇살이 쉬는 언덕에 올라서니 물질 나가는 할머니 이야기가 조곤조곤 들리는 듯 하고 강 건너 늑도 분교가 되살아나 아이들 손짓이 숲처럼 무성히 우거질 것만 같다. 봄이면 노란 유채가 이국의 숲을 이루고 여름, 가을까지 하늘이 바다와 손잡고 그 옛날 군마용 목초를 키웠던 본향의 섬으로 성장하는 초양도는 이제 바다케이블카가 정박하는 사천의 보물섬으로 탈바꿈했다. 용궁 출장소에 입주 신고를 마치고 남쪽 대숲길을 따라 휴게소 전망대에 올라 타이타닉 뱃머리 씬 한 컷을 찍는다. 걸어 온 길이 파릇파릇 봄처럼 스멀거린다.

 

유채로 뒤덮힌 초양도와 삼천포대교의 봄

유채가 우려내는 달콤한 용궁의 봄, 늑도

늑도까지 왔으나 아직 코끼리는 만나지 못했다. 패총과 유물들이 옛 무역과 고대사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는 늑도는 또 하나의 보물섬이다. 고깃배들의 어깨소리가 다정하다. 방파제 사이로 부지런히 들고나는 어선들의 포말 뒤로 늑도의 영화가 살아 꿈틀거린다. 방파제 위에는 손맛을 기다리는 낚시꾼들이 평화롭게 출렁거린다. 간간이 수면위로 인사를 건네는 고래나 해달의 몸짓이 진풍경으로 다가오는 길 맛 좋은 늑도는 알록달록 바다를 옮겨놓은 벽화들로 벌써 용궁의 봄을 잉태하고 있다. 물살 빠른 해협에도 우람한 근육을 뽐내는 용궁열차가 부지런히 바다 숲을 실어 나르며 섬을 키우고 있다. 유채를 우려낸 노란 착즙의 봄이 기다려진다. 코끼리는 한창 열차 운행 중이란다.

 

고대 무역의 중심지였던 늑도 전경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용궁 숲길, 사천 이순신바닷길

모개와 초량과 늑도를 잇는 창선-삼천포대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용궁숲길이다. 그 길 따라 하늘이 내려앉은 옥빛 바다가 물살을 키우며 길을 열고 정원을 꾸며 만선의 숲을 이루었다. 굴항의 노고가 평화스러운 오침에 들고 파란 바다의 후예들이 맛깔스러운 바람으로 정박하는 군영숲 너머 초량과 늑도에는 남일대 코끼리가 운전하는 용궁행 특급열차가 기적을 채우고 있다. 노을이 깨어나는 시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용궁 숲, 맛있는 길과 숲이 사천 바다에 있다. 여기는 사천 이순신바닷길 노을 맛집이다. 끝.

 

용궁가는 사천 이순신길 간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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