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삼천포 각산 공작소’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은 뚝심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한 분야를 꾸준하게 하시는 분들은 대단한 분들이다.

그중에서도 뚝심으로 외길 인생을 살아오신 대방동에 있는 각산 공작소 어르신을 만나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서자마자 열기가 후끈한 공작소 안은 대략 30도를 넘나드는 온도였다.

무더운 한낮, 현장에는 오래된 선풍기 한 대와 공작소를 가득 메운 많은 쇳덩이로 한가득하였다. 그곳은 마치 작은 공장이자 창고로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1인 기업인 셈이었다. 먼 곳으로 수리하러 가기 힘든 일감들을 슈퍼맨처럼 해결해 주시곤 하였다. 이야기를 한창 나누는 동안에도 쇠갈고리를 들고 오신 손님이 계셨다. 머리 맞대어 손님이 원하는 대로 능력껏 해결해 주시는 어르신에게서 프로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 쥐포가 호황인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

대장간 일을 하게 된 건 젊은 날 부친이 돌아가시자, 일을 이어받아서 타향살이 생활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시작하게 되었단다.

어느덧 이 일이 결혼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지나가는 강아지도 길에 떨어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수산업이 호황인 시절이었다. 삼천포는 쥐 고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대다수여서, 당연히 가정마다 생선 다듬는 칼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차츰 쥐 고기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쥐 고기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되자, 만들어 둔 칼들도 가뭄에 콩 나듯이 팔린다고 한다.

그리고 값싼 중국산 칼에 밀려 대장간 칼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가격에서 밀려 쳐다보지도 않는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용접하고 수리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셨다.

 

70세를 훌쩍 넘긴 나이,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

부족한 실력이지만 아는 만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전수자가 없단다. 젊은이들은 더더구나 대장간 일을 꺼린다고..

그동안 1남 1녀의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현재의 집(공작소 뒤편)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고 하셨다.

73세로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도 힘든 나이로, 건강을 위해서 좋아하는 운동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시다가 여생을 마무리하는 게 꿈이란다.

 

외길 인생, 진정한 삶의 달인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제일 잘하신 일이 무엇이냐고 여쭈어보니, 잠시 어려웠던 시절 고생을 많이 한 아내를 선택하고 결혼해서 현재까지 살아온 일이라 하신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삶의 공을 아내에게 돌리시는 어르신의 표정에서 행복이 느껴졌다.

우리 동네에 아직도 고집스럽게 한길을 살아가고 계시는 한 분야의 달인인 분이 계신 것만으로 자랑스러웠다.

후덥지근한 실내, 이 더운 여름 잘 이겨내시고 건강하게 하시는 일을 계속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