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품은 무화과

어제 백천골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으시는 선복 아재네에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또는 그런 힘)을 갔다.
한 고랑에 100미터가 넘는 참깨밭 열 고랑을 수확했는데
(두 번 다시 체험하고 싶지 않은 ‘체험 삶의 현장’ ㅠ)
너무 덥고, 일이 고되어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하고는 품삯으로 얻어온 무화과로 잼을 만들었다.
선복 아재네 무화과는 특별히 달고 맛있다.

나는 어릴 때 동네 집집마다 한 그루씩 있는 무화과가 그렇게 보기가 싫었다.
어린 눈으로 봤을 때 무화과나무는 예쁜 꽃을 피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지에 잎이 무성하여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숨바꼭질에 요긴하게 몸을 숨겨주는 나무도 아니었다.
열매가 맛있거나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닌데 왜 집집마다 무화과나무는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별명도 우리 지역에선 19금스럽게 젖꼭대기라고 불렸었다. 아마도 열매를 따면 나오는 하얀 진액 같은 걸 보고 그리 붙였나 보다.
고작 열매라고 매달려서 따 보면 하얀 젖이 나오는 것처럼 찐득한 것이 여간 상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또 맛을 보니 새콤달콤한 것도 아니고 입 주변이 아린 것이 영 불쾌한 맛이었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난 이담에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저 촌스러운 무화과는 절대로 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30년 동안 무화과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내가 먹은 무화과는 아직 익지 않은 상태의 무화과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옛것에 대한 미학을 깨달아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어쩌다가 나는 무화과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여름이 끝날 때 즈음에는 무화과가 익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으니……

겉으로 꽃이 보이지 않으므로 무화과라 불렸다는데, 로마에서는 바쿠스(Bacchus)라는 주신(酒神)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다산의 표지로 삼고 있고, 꽃말 ‘다산’이란 뜻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라고 알려져 있다.

 

잘 익은 무화과를 반으로 쪼개어보면 자잘한 씨앗 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바로 무화과의 꽃이란다.
꽃이 열매 속에서 피고 그것이 익어 따 먹을 수가 있는 꽃을 품은 무화과……
내 눈에는 그 수많은 꽃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무화과는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그 진득한 맛을 무엇으로 표현하면 가장 잘 살릴 수가 있을까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잼은 기본이요, 샐러드나 요구르트 토핑으로, 케이크나 파이를 만들어도 좋고 어제는 친정엄마 생신에 무화과 케이크를 만들어 드렸다.
달큰하고 농후한 맛이 일품인 선복 아재네 무화과는 해마다 귀한 보약처럼 여겨지는데 올해를 마지막으로 무화과 밭을 팔았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져 너무나 아쉽다. ㅜ

나는 오늘도 이 귀한 무화과로 무슨 요리를 해볼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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