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배의 삼천포 바다 – 두 번째 이야기

사람 – 사천 출신 소설가 김인배

소설 ⌜환상의 배⌟

김인배의 바다, 삼천포의 바다로 이어진 길은 호수 같은 잔잔함으로 다가온다. 삼천포의 바다와 섬과 하늘이 빚어내는 그림 같은 풍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한려수도(閑麗水道)라는 이름 만큼 이 바다는 동해의 탁 트인 바다, 서해의 어느 바다나 제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와는 또 다른 질감의 색을 띠고 있다.

삼천포의 바다, 그 중에서도 소설가 김인배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소설 속에 투영된 대방동 ‘각산개(角山浦)’와 실안의 ‘얕은개’는 더욱 그 빛깔이 남다르다.

이 두 ‘개’ 앞의 바다 위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섬들이 촘촘히 놓여있다. 어느 ‘개’에 선다 한들 오른쪽 끝의 딱섬에서부터 병풍처럼 바닷바람을 막고 서 있는 마도, 저도, 늑도, 초양도, 모개도, 학섬을 차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섬들의 뒤편에는 남해군의 산들이 우람하면서도 희미하게 버티고 있는 게 보인다.

김인배의 바다는 설화적, 종교적, 철학적 성찰의 바다이다. 소설 ⌜환상의 배⌟에서 ‘흰 수염 할아버지’를 묘사할 때, <떠나온 용궁>, <수구초심의 한결 같은 눈빛>, <언젠가 떠날 자기의 여행이 어떻게 끝날지를 묻고 있는> 등의 환상적이고 철학적인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산개, 얕은개 앞바다의 무엇이 김인배 소설가를 관념적이고 사색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닫혀 있는 듯하면서도 열려 있고, 열려 있는 듯하면서도 닫혀 있는 이 바다의 묘한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곳 각산개와 얕은개의 바다는 개방적인 이미지와 폐쇄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개방적이지만, 저 여러 섬들로 막혀 있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점에서는 폐쇄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바다를 통해 사물과 현상의 양면을 보는 법을 관념적으로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전에 그는 외할버지의 멸막(소금물로 멸치를 삶는 조그만 움막)이 있던 시절과 ⌜바다물결에 반질반질 닦인 매끄러운 잔돌이나 조개껍질로 오만가지 형태를 만드느라고 해 저무는 줄 몰랐던⌟ 아련한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소설대로라면 그는 그 시절에 지금은 거의 없어진 모래밭에 누워 ‘늑도’ 물밑에서 고둥이 우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또,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초월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해가 이울고 놀이 퍼지기 시작하자 물 색깔이 좀 전과 달라졌다. 달라지는 속도가 놀랍도록 재빠르다. 그것을 작가는 “바다 색깔은 열세 가지”라고 말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서양화를 그렸던 그의 말에 따르면 가장 먼 수평선 쪽의 바다는 연옥색, 폭풍이 올 무렵의 바다는 인디고 블루(쪽빛)이다.

해가 서산에 걸리기 직전의 바다는 청록색 -군청색- 암청색으로 변한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는 안개에 싸인 듯한 우윳빛이었다가 놀이 지면 은황색- 연자색-주황색 – 적황색- 자주색- 진주홍색 천으로 맵시를 바꾼다. 그리고 맑은 한낮에는, 가까운 바다는 진초록, 먼 바다는 청회색이다.

날이 저물어서 각산개의 바다를 떠난다. 이내 시내의 불빛이 보인다. 저 불빛들을 바라보는 심사(心思)는 소설 속의 성인이 된 ‘나’가 느꼈던 애수와 비슷할 것이다. 이제 그 관념의 바다를 떠나 관계와 관계 속으로, 아웅다웅 하는 사이와 사이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삼천포바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김인배의 소설 속 바다도 세월 따라 변해 갔다.

바다 위로 ‘각산개’와 창선을 잇는 연륙교가 놓이고, 공중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바다케이블카가 초양도와 이어져 누구나 손쉽게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얕은개’에는 수상 낚시터가 생기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거리도 생겨났다. 이제는 유년 시절 아련한 추억의 바다가 아닌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일상의 바다가 되었다.

 

⌜환상의 배 줄거리⌟

삼천포바다

학섬이 눈앞에 보이는 포구에 다시 왔다. ‘얕은개’였다. 나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외할아버지의 멸막(소금물로 멸치를 삶는 조그만 움막)이 있던 이곳에서 보냈다. 바다에 얽힌 추억과 함께 <흰 수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그때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든 채 해안선 가까이 배를 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날마다 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한 번도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한바다로 떠나는 사람처럼 항시 닻을 올리고 있었다.

부락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보도연맹에 연루돼 경찰에 잡혀 갔다가 총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뒤 남들 눈에 띌 염려가 적은 바다의 뱃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을 때 아무도 모르게 고향을 찾아간 그는 아내가 재혼한 사실을 알고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바다의 야릇한 표정을 응시하며, 자기의 여행이 어떻게 끝날 지를 바다에게 묻고, 그 바다의 내밀한 전갈에 귀를 기울이는 데만 열심이었다.

어느 날 새벽, 나는 노인이 없는 틈을 타 빈 조각배 위에 올라가 샅샅이 배를 조사했다. 그러다가 그와 맞닥뜨렸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그는 ‘노인은 한낱 어린애에 불과하다’며 나를 대등하게 대우해 주었다.

그는 모래밭에서 내게 꿈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 ‘늑도’의 물밑 고둥이 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모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나는 그 바닷가 놀이터를 떠났다. 뒷날 나는 거기로 가서 노인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나는 그가 없는 바닷가에서 막연한 직관으로 인간의 헤어짐과 만남에 대한 본질을 알았다. 바다와의 인연은 끊어졌으나 유년 시절의 바다의 여운은 지속되었다. 내부에서 한시도 쉴 새 없이 출렁거리는 물결소리에 끌려서 선원이 될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싸움을 한 날 밤 달빛 아래서 형체도 어스름히 찢어진 돛을 단 늙은 조각배 한 척이 바다 위를 떠가는 것을 보았다. 흰 수염 할아버지였을까? 나는 내가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 내가 고향의 이 바닷가로 찾아 온 것은 순전히 무료함을 메우기 위한 산책의 의미밖에 없었다. 바다는 바다일 뿐이었고, 추억은 추억일 뿐이었다. 성인이 되어 찾은 고향의 바다는 다시 헤어짐과 만남의 단순함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었다.

 

<소설가 김인배> (1948~ 2019)

소설가 김인배

사천(삼천포항)출신, 1975년 문학과 지성에 소설 ‘방울뱀’으로 등단. 1980년대 ‘작가’ 동인으로 활동함. 1982년 현대문학에 중편 ‘물목’이 그 해의 소설로 선정되고, 조명화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됨.

소설집 : ‘하늘궁전’, ‘문신’, ‘후박나무 밑의 사랑’, ‘비형랑의 낮과 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 ‘오동나무 꽃 진 자리’, ‘열린 문 닫힌 문’ 등

우리말 연구서 및 한일 고대사 연구서 :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가’,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 ‘고대로 흐르는 물길’, 역설의 한일 고대사 任那新論’, ‘일본천황가의한국식 이름 연구 들의 이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