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나오는 제철 음식’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밥상 먹거리도 달라진다. 제철에 나오는 채소로 요리도 하고 몸도 챙긴다. 봄철에는 땅을 갓 뚫고 나온 냉이나 쑥을 무쳐 먹거나 국으로 먹는다. 여름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오이나 고추를 따서 쌈장에 찍어 먹으면, 더운 날 입맛을 잃어갈 때 좋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고구마나 땅콩 등 구황작물을 캐서 겨울까지 준비한다. 속이 단단하고 단맛이 나는 밤고구마는 삶아서 먹으면 좋고, 물이 많은 부드러운 물고구마는 구워 먹으면 단맛이 더 강해져서 맛있다. 찬 바람에 갓 삶거나 구운 고구마를 후후 불어가면서 먹으면 몸이 절로 따뜻해진다.
추석이 지나고 텃밭에서는 고구마와 땅콩 수확으로 바빠졌다.
‘첫사랑, 고구마 이름입니다’

친구는 맛있는 고구마 품종을 얻었다고 즐거워했다. 6월, 비닐을 덮은 도랑에 어슷하게 줄기를 심어놓으면 뿌리를 내리고 열매가 자란다. 9월, 줄기를 걷어내고 땅을 파면 고구마가 나온다. 더러 줄기를 따라 나오는 고구마를 보면 기분이 좋다. 호미로 땅을 파는 수고로움을 덜하기도 하고 빨리 만나는 기쁨이 있다. 빨리 캐내고 싶은 마음에, 호미에 힘을 줘서 땅을 파면 고구마에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조금씩 땅을 걷어내고 고구마의 깊이를 헤아려 파내야 한다. 크고 많이 열릴수록 관리를 잘한 것인데, 올해는 늦장을 부려 수확량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빛깔이 곱다. 겉이 짙은 분홍색이다. 첫사랑, 고구마의 이름이다. 아마도 겉의 붉은 색이 주는 설레는 느낌과 노란 속의 달달함으로 지어진 이름인 듯하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다는 허세로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첫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관계를 이어가기엔 서툴렀고, 시기가 맞지 않았던 만남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상황도 있었다. 모종을 구하고, 심고, 지켜보면서 관리도 중요하지만, 땅의 성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 고구마와 다르지 않다.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심었지만, 관리가 소홀해지기도 하고, 멧돼지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배수처리가 안되어 수확량이 적다. 원하는 대로는 아니지만 여러 문제 중에도 자라난 고구마를 보면 뿌듯하고, 감사하다.
사랑을 알게 되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과 결과가 생긴다. 잘 못 되었다는 생각에 힘은 들었지만, 끝은 아니었다. 또 다른 만남은 시작되었고, 그 전의 경험을 통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랑은 목메이는 퍽퍽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따뜻하고 달달하게 앞으로 나아갈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한다.
‘주렁주렁, 땅콩도 있습니다’

고구마 옆에는 땅콩을 심었다. 무성한 줄기를 잡아당기니 주렁주렁 땅콩이 따라 나온다. 땅콩의 모양은 동글동글 아기집처럼 생겼다. 탯줄 같은 뿌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더 아기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뿌리에서 똑똑 따내면 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세상에 갓 나온 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렁찰수록 건강하듯 속이 단단하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웃음이 난다. 1남 5녀로 막내로 자라면서 형제들의 좋은 점도 알았지만 한 아이에게 온전히 마음을 써보고 싶었다. 아이 하나만 낳아 잘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왜 그리 이쁘던지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주렁주렁 아들이 셋.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밖에 다닐 때는 ‘엄마가 고생이 많겠네’, ‘힘들어서 어떻게 키워?’, ‘아들 키우는 엄마는 드세진다던데…’ 라는 여러 말들을 듣는다. 언젠가 식사하러 간 식당에 주인 어르신이 아들들을 보며 “아들이 셋이면 엄마 힘들다. 너희들이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육아에 힘들 나를 위하는 말씀으로 하셨겠지만 연달아 가는 곳마다 저런 말씀을 하시니 아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다 싶어 냉큼 내가 대답을 했다. “전 아들들을 만나서 다행인데요. 셋을 만나서 덕분에 제가 행복해요.” 그제서야 큰 아들이 밝은 표정으로“네, 저희 엄마 말도 잘 듣고 형제끼리 잘 지내요.”라고 한다. 어린 동생들도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긍정적으로 볼 줄 알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이 좋다.